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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들

나의 이사 이야기 (3) - 내 마음(Feat.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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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는 시험으로 방황한 인생이었다.

 

주변의 친구들 중에서 성공한 케이스도 많지만 

 

나처럼 실패하고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도 많다.

 

20대의 절반을 이 시험에 매진하느라 모든 것이 끊겼지만,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보다도 제일 큰 것은 내 동생에 대한 아쉬움이다. 

 

매년 아쉽게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늘 나에 대한 웃음을 잃지 않고 함께 해 준 동생이 고맙다. 

 

결론적으로 나는 조금 돌아왔지만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동생은 좀 특별하게 산다.

 

전세계를 떠돌며... 어찌보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시험에 붙었다면 내 삶보다도 내 동생의 삶이 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역마살도 사라졌을텐데... 

 

 

나보다 경제활동을 먼저 한 동생이 제안한 것은 독립이었다.

 

당시는 미분양되었던  아파트가 많았는데, 근처에 그런 아파트로 일단 나가 해보자는 것이었다.

 

컨테이너에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이었기에 뭐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대출은 저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6000만원이었지 싶다. 20년도 정도 전이니 지금하고는 시세가 많이 다르다.

 

그렇게 최초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그 뒤로도 동생의 제안으로 아파트를 매매하게 되었고, 거기에 지금 내가 살고 있다.

 

보통 결혼을 할 때 쯤이면 부모님의 지원으로 아니면 자수성가로 이루어지는데,

 

나의 결혼 생활은 동생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나와 동생 사이에 처음 계획되었던 금전적인 암묵적인 거래가 

 

그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와이프와 갈등도 많았다.

 

동생이 손해를 보았지만 많이 내려놓았으리라.

 

난 항상 미안하고 무엇인가 내가 나에게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마다,

 

-이사 같은 것 말이다..-

 

주춤거리게 되고 동생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해 준 것은 없다.

 

언제나 마음 속에 미안함이 남아 있다.

 

내 앞가림하기에도 빠듯한 형편에 부모님도 거의 동생이 챙기다시피 한다.

 

이런 고요한 밤이면

 

그래서 

 

자괴감과 미안함... 그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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