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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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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사 이야기 (8) - 독립 20대 초반까지 부모님과 함께 공장에 딸린 컨테이너에 살았다 . 동생이 부산부산해양대를 졸업하고 먼저 취업을 했었다 . 그래서 나보다 먼저 경제적으로 눈을 뜬 듯 하다. 어느날 말한다. "히야, 옆에 아파트 미분양 전세 떴는데, 우리 거기로 가자." "니는 주말에만 오는데, 말라꼬.." "그래도 아파트 한번 살아보지 뭐." "그러든가." 당시에 2008년 미분양사태로 회사보유분 전세가 엄청 풀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하나 줍줍할 껄.. 하지만 우리가 돈이 없어서 못하지, 정보가 없어서 못하나. ㅎㅎ 어쨌든 동생이 대부분 마련하여 30평, 6000만원 전세에 혼자 살게 되었다. 엄마, 아빠도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안 가신단다. 늘 미안하신 모양이셨던 것 같다. 보통 아들들이 결혼하고 독립하고 하면, ..
나의 이사 이야기 (7) - 성서에서 옥포로 성서에서 초5부터 고1까지 살았던 것 같다. 거진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여기에서 보낸 듯하고...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만나는 친구들은 많이 없지만, 가끔 만나는 학창시절 소중한 친구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이긴 하다. 20대 초중반에 어떤 몹쓸 병에 빠져 있어서 인간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는데, 그래도 내 10대를 기억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각설하고... 성서 공장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옥포 공장으로 또 이사를 갔다. 아버지 공장 주인이 부도가 나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성서 공장은 공단이었는데, 옥포는 공단까지는 아니고 띄엄띄엄 공장이 있는 곳이었다. 아마 이때 내가 꿈꾸던 집은 빨간 벽돌집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그냥 시멘트에 스레트(슬레이트)지..
나의 이사 이야기 (6) - 칠곡에서 성서로 아빠가 공장을 조금 크게 확장하셨는 것 같다. 기계가 6대에서 엄청 늘어났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발을 빼셨다면, 지금 더 잘 사셨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후회는 해서 뭐하랴... 나와 내 동생...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지금 지내고 있으면 된것이지... 다만, 엄마가 덜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노동으로 인한 근골격계질환이 안 생기셨을지도 모르겠다. 칠곡에서도 공장사택에 살았고, 새로 이사온 여기 성서도 공장 사택이지만,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여기는 공업단지였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아무도 없는... 이사 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으셨는가 보다. 나중에 알기로는, 성당동 집도 팔았고, 보증 관련해서 무엇인가 이상해지고... 무엇을 해결하시느라 늘 밤에 사람 만나러 가셔서 나와 내동생..
나의 이사 이야기 (5) - 칠곡 두번째 이야기 4학년때는 5반이었다. 기억나는 것이 많다. 1. 담임선생님께서 결혼을 하셨고 2. 과학발명품?을 만들라고 엄마가 돈을 줬는데, 장난감 샀고 3. 단체로 친구를 놀리다가 친구가 입원했고... 4. 전학간 친구집에 버스타고 놀러갔고 5. 베프를 만들었던 기억.. 꽤 떠오르다. 간단히만 적어보자.. 죽을때가 되었나.. 왜 옛날 생각들이 나는지.... 1. 담임선생님께서 결혼을 하셨다. 나는 학생이었는데, 엄마랑 결혼식 간 기억이 난다. 그런 문화였나.. 지금도 담임선생님께서 결혼을 하시면 가서 노래를 하니마니 이런 것읃 본 것 같은데 그냥 학생이 가서 뭘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남편이 검사였던 것 같다. 지금은 대단한 사람이구나 했지만, 그떄 꼬마가 뭘 알았나.. 우리 담임선생님 대단하셨네;;;;;; 2...
나의 이사 이야기 (4) - 어린 시절(from 성당동 to 칠곡 태전교)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나가면 오후에 들어온다. 자전거와 축구공을 가지고 어디를 다니는지, 하루 종일 쏘다닌다. 이렇게 동네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동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데, 이사를 간다면 이 아이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내 어린 시절 이사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 보려 한다. 반백살에 다가가고 있어서 기억이 드문드문 나고 그 시절의 교우관계는 이제 다 소원해졌지만, 의식의 흐름에 따라 한번 써보자. 최초의 기억은 지금은 '초등학교'로 변해버린 '국민학교' 1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당시 나의 이사는 부모님의 재테크 목적이 아닌, 공장의 이동에 의한 것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작은 섬유공장을 하셨다. 이때 부모님은 '직원'에서 '사장'으로 변신을 시도하셨던 것 같다..
나의 이사 이야기 (3) - 내 마음(Feat. 동생) 20대의 나는 시험으로 방황한 인생이었다. 주변의 친구들 중에서 성공한 케이스도 많지만 나처럼 실패하고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도 많다. 20대의 절반을 이 시험에 매진하느라 모든 것이 끊겼지만,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 부모님에 대한 아쉬움보다도 제일 큰 것은 내 동생에 대한 아쉬움이다. 매년 아쉽게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늘 나에 대한 웃음을 잃지 않고 함께 해 준 동생이 고맙다. 결론적으로 나는 조금 돌아왔지만 그냥저냥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동생은 좀 특별하게 산다. 전세계를 떠돌며... 어찌보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시험에 붙었다면 내 삶보다도 내 동생의 삶이 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역마살도 사라졌을텐데... 나보다 경제활동을 먼저 한 동생이 제안한 것은 독립이었다...
나의 이사 이야기 (2) - 내 마음(Feat. 부모님) 장남 컴플렉스라고 하나... 그런 것이 나에게는 있다. https://jdsoul1.tistory.com/1162 오은영선생님이 말하는 장녀, 장남 컴플렉스 오은영선생님이 말하는 장녀, 장남 컴플렉스 jdsoul1.tistory.com 결핍의 흔적이라고 한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는데... 결핍의 흔적과는 다른 무언의 것이 조금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은 나를 부족함 없이 키워주신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반백살이 가까워지면서 과거를 생각해 보면 늘 기억나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부모님은 대구에서도 한때 호황을 누렸던 섬유공장을 하셨는데, 부모님 친구분들 대부분 그러시겠지만, 다 남은 것 없이 접으셨다. 3교대라고 하나.. 철저하게 노동집약적인 산업인 섬유공장은 24시간 ..
나의 이사 이야기(1) : 서막 첫째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사실 5학년이라서 아직 좀 남았긴 하다만... 나와는 달리 집사람은 조금 더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겠지만, 좀 더 괜찮은(?) 친구들과 좋은 환경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사실, 근묵자흑이라고...내가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 옆에 붙지만, 주변의 영향을 많이 타는 스타일인만큼 공부하는 분위기 속에 던져놓고 싶어한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는 수성구가 유명하다. 거기까지는 엄청 대출을 많이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무리이고 나름 현실적인 월성동 쪽으로 보고 있다. 어제도 몇군데 집을 보고 왔는데, 철저하게 보수적인 나는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돈도 없지만... 돈이 많아서 초신축이라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할 듯.... 어쨌든 이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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